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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상류층과 부자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나라가 안정이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국내 사례를 추적하면서 발견한 사실 가운데 하나가 호남의 부자들 이야기이다. 해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호남지역에 부자들이 많았다. 호남은 들판이 넓어 타 지역에 비해 만석꾼이 많았다. 신안군, 완도군, 진도군 일대에 산재된 수백 군데의 섬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소금은 바로 돈이었다. 호남은 바닷길을 통한 해상물류(海上物流)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부자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었다.
구한말에서 1950년대까지 호남의 큰 부자 집안을 꼽아보면 이렇다. 전북 부안에는 십만 석 부자라고 일컫던 인촌 김성수가 있었다. 인촌은 전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세웠다. 광주에는 무송 현준호가 있었다. 무송은 일제강점기에 호남은행을 창립해 일제의 자본수탈에 대항하다가 끝내는 강제해산을 당했다. 전남대는 의과대로 출발했는데 전남의대의 전신이 ‘광주의학전문학교’였다. ‘광주의전’을 세울 때 무송이 발벗고 나서 거액을 내놓았다. 얼마 전 작고한 현대상선의 현영원 회장이 무송의 셋째 아들이고,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바로 현준호의 손녀딸이다.
순천에는 우석 김종익이 있었다. 서울 혜화동에 여자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경성여의전’(우석대학 전신)은 우석의 돈으로 세운 학교이다. 순천고와 순천여고도 우석이 세웠다. 목포에는 누가 있었는가. 문재철이 있었다. 문재철은 목포와 신안군 일대 섬들을 중심으로 한 염전, 면화, 물류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 오늘날로 치면 종합상사에 해당한다. 문재철은 인촌의 고려대학 인수를 보면서 민족학교를 세워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현재 목포의 명문사립고인 문태 고등학교가 바로 그 학교이다. 여수의 부자는 김익평(金翼坪)이었다. 당시 평(坪)자 항렬 28명을 ‘28평’으로 불렀는데, 이 가운데 26명이 일본 유학생 출신이다. 현재 여수의 진성여자 중·고교, 한영고교, 한영공전이 이 집안에서 세운 학교이다. 이들 호남부자들은 모두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다는 게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