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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화약 | ||
연기없는 화약 오늘날 무연화약(Smokeless Powder)이라는 용어는 총포류에서 탄환을 발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추진약(Propellant)을 총칭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주로 면화약(Cellulose nitrate)을 기제로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상당량의 니트로글리세린(Glycerine nitrate)이나 또는 니트로구아니딘(Nitroguanidine)까지 함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무연화약이 출현하는 19세기말엽까지 천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유일한 화약으로 사용된 흑색화약은 발사시에 많은 연기를 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화약은 발연량이 아주 작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붙은 이름이 무연화약이다. 면화약의 성능 개량연구 면화약을 발사약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이미 쉔바인이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면화약의 화학적 성질이나 불안정성에 관한 원인이 규명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쉔바인 당시로서는 시기 상조였다. 그럼에도 렌크 또는 쉔바인 등에 의해서 면화약 자체를 화포의 발사약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은 미세한 면화약을 압착하는 방법을 고안하였지만 실용화하기에는 연소속도가 너무 빨랐으며 총포신의 손상도 크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프러시아의 슐쩨(E. Schultze)가 1865년에 면화약과 질산칼륨 또는 질산바륨의 혼합물을 엽총용 발사약에 사용하였다. 이는 사상 최초의 무연화약에 해당되지만 군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연소 속도가 빨랐다. 이들 화약은 사실상 흑색화약과 같은 개념이지만 연소할 때 연기가 적다는 무연화약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이로부터 몇 년 뒤에는 면화약의 여러 가지 유기용매에 대한 용해성이 규명되기 시작했다. 먼저 1871년 오스트리아의 폴크만(F. Polkmann)이 에테르와 알코올에 침지한 면화약을 사용하여 슐쩨 화약을 제조하였다. 이어서 1874년에는 하티히(Hartig)가 면화약을 아세톤이나 아세트산에틸과 같은 유기 용매로 처리하면 고비중이 될 뿐 아니라 연소속도도 현저히 감소된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면화약 활용에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 이같은 면화약의 성질을 이용하려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착수됐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공 하지 못했다. 그러나 1887년 두텐호퍼(M. von Duttenhofer)가 개발한 알씨피(Rottweil Cellulose Pulver)는 한 때 독일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알씨피는 면화약을 아세트산에틸로 교질화시킨 다음 용제를 휘발시킬 때 얻어지는 괴상(塊狀)의 면화약을 입상으로 분쇄한 형태이다. 이렇게 만든 알씨피는 제조시 입도를 균질하게 유지하기 곤란한 결점은 있었지만 품질면에서는 상당히 개량된 수준이었다. 비에이유에 의해 탄생 비에이유에 의해 본격적인 무연화약이 발명됨으로써 알씨피는 별다른 주의를 끌지 못하였다. 프랑스의 대화약자인 비에이유(Paul Marie Eugene Vielle, 1854-1934년)는 화약 연구소(Laboratoire Central des Poudres et Salpetres)의 부소장에 취임하던 1879년부터 발사약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검압계를 이용해 화약의 연소속도나 연소상태를 계측적으로 시험하였다. 그 결과 고비중화된 흑색화약은 표면에 연소층을 형성하지만 섬유상의 면화약은 아무리 압착해도 표면연소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면화약을 용매에 처리해 고비중화된 경우에는 표면이 연소되면서도 연소속도 는 현저히 감소된다는 사실과 편상의 연소 시간은 입도의 크기 즉 약의 두께에 좌우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1884년에는 면화약을 에테르-알코올에 교화시킨 페이스트를 롤러에 걸어서 박판상으로 성형한 다음 이를 편상으로 절단하고 건조시킨 화약을 만들었다. 이 화약은 탄도학적으로도 성능이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다음 해인 1885년에 군용발사약으로 채용하였다. 그리고 볼랑게(Boulanger) 장군의 이름을 붙여서 B-화약(Poudre B)이라 명명 했다. 이어서 1890년에는 러시아의 메델레예프(D.I. Medeleyev)가 비교적 고질소량 (N=12.5%)의 면화약(Pyrocotton)을 에테르-알코올에 완전 용해시킨 화약을 제조했다. 이 화약은 1892년 러시아해군에서 채용되었으며 미국에서도 단기화약(Single base powder) 또는 니트로셀루로즈 화약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볼리스타이트와 코다이트 화약 한편 1888년에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인 노벨(A. Nobel)이 볼리스타이트(Ballistite)라는 다른 방식의 무연화약을 만들었다. 그는 약면약이 니트로글리세린에 교화되는 사실을 발견하고 휘발성 용제를 쓰지 않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같은 양의 면화약과 니트로글리세린 혼합물을 가온된 롤러로 압연하여 교화시키고 소정의 입도로 절단했다. 이렇게 만든 무연화약은 건조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성능도 우수하였기 때문에 프랑스나 독일 등에서 화포용으로 널리 사용됐다. 특히 볼리스타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상당한 발전을 거듭하면서 활용됐는데 지금은 특수한 용도에서만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볼리스타이트가 출현한 같은 해에 영국의 에이벨(F.A. Abel)과 듀워(J. Dewer)는 코다이트 (Cordite)화약을 제조하였다. 코다이트화약은 고질소 함량의 강면약과 니트로글리세린의 혼합물을 아세톤으로 교화시켜 성형한 다음 건조한 발사약이었다. 영국은 코다이트를 군용화약으로 채용하고 1891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893년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등 에서도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면화약과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2종류의 기제를 사용하는 복기화약(Double base powder) 또는 니트로글리세린 화약은 이런 과정을 거쳐 실용화되었다. 이로써 면화약을 사용하는 무연화약의 기본이 확립되었으며 수백년 동안 유일한 발사약이었던 흑색화약의 역할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센트랄리트의 발전 화약계의 관심은 복기화약의 연소시에 활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면화약에 대해 용해성이 있는 니트로글리세린에 기울게 된다. 실제로 제조시 휘발성 용제를 사용하면 건조를 위한 공정 등이 따르기 때문에 번거로웠다. 그러나 면화약을 니트로글리세린만으로 교화하기에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면화약의 교화에 도움이 되는 비휘발성 용제(교화제, Gelatinizing agent)의 개발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10년에는 독일의 클래센(C. Claessen)이 교화제로 센트랄리트(Centralite, 영국에서는 Carbamite라 함)를 배합한 복기 무연화약을 최초로 제조하였다. 그리고 1912년에 는 알피-12 및 알피씨(RPC, Rohrenpulver mit Centralit 1912의 약칭) 화약을 생산하게 됐다. 이렇게 만든 화약은 제조공정이 간단할 뿐 아니라 니트로글리세린의 절약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특히 제1차대전 중에는 독일을 지지하는 동맹국의 장기적 저항에도 큰 몫을 하게 됐다. 이밖에도 면화약의 교화제 또는 니트로글리세린의 대체 물질이 여러 가지 제시되었으나 전쟁 상황과 같은 특수한 경우 외에는 실용성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독일 노이바벨스베르그(Neubabelsberg)의 과학기술중앙연구소(Zentralstelle fuer wissenschaftlich-technische Untersuchungen)가 처음 합성하고 1906년 화약의 제조에 사용됐던 센트랄리트는 계속 발전했다. 원래 센트랄리트는 화학적으로 대칭-디에틸디페닐우레아(Diethyldiphenylurea)의 비명(秘名)이었으나 얼마 뒤 여러 가지 유도체들이 합성되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구조의 화합물이 속속 출현하면서 교화제에 대한 연구도 일단락됐다. 니트로구아니틴을 배합한 구돌화약 무연화약, 특히 니트로글리세린이 함유된 복기화약은 연소될 때 상당한 열이 발생해 포신에 손상을 주었다. 이 때문에 복기화약의 연소 열량과 발사화염을 감소시키는 감열 소염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여러 가지 화합물이 제시됐다. 그중 디엔티(DNT, Dinitrotoluene)류의 방향족 니트로화합물 또는 황산칼륨과 같은 무기염류가 가장 널리 사용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과 영국 양국에서 니트로구아니딘 (Nitroguanidine)을 복기화약에 배합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이나 영국은 니트로글리세린의 절약을 위해 교화제를 니트로디글리콜 (Nitrodiglycol)로 일부 대체한 복기무연화약을 제조하고 있었다. 여기에 상당량의 니트로구아니딘을 상례적으로 배합하였는데 이를 독일에서는 구돌화약(Gudol Pulver)라고 불렀다. 니트로구아니딘은 복기화약의 우수한 감열소염제로 이를 배합한 복기화약을 삼기화약 (Triple base powder)이나 다기화약(Multiple base powder)으로 구분하게 됐다. 무연 화약 제조법 무연화약을 제조할 때 용제의 사용여부에 따라 용제 화약과 무용제 화약으로 구분하며 무용제 화약의 교화제는 비휘발성 용제라고 한다. 이들의 성형방법은 보통 압착기의 금형을 통해서 압신 절단하는데 판상의 무용제화약은 롤러로 압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로켓 추진약 등을 만들 때 주형법(Casting method)이 채용되고 있으며 소화기용에는 용액 중에서 성형한 구상화약(Ball powder)도 사용되고 있다. 주형법은 구상화한 니트로셀루로즈를 미리 원하는 모양의 금형에 채운 다음 니트로글리세린을 침투시켜 제조한다. 이 방법은 주로 압신 성형하기 어려운 대형 로켓용에 사용된다. 구상화약은 니트로셀루로즈와 니트로글리세 린의 교화물을 수용액 중에서 구형화하는데 군용 소화기용으로 최근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 |
출처 : 화약박물관(http://museum.hanwha.co.kr:7400/b/history_temp.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