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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화속도가 ‘콰이콰이디(快快地·빨리빨리)’로 바뀐 지 오래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까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주 중국측 초청으로 장쑤성(江蘇省) 북부 항구도시 롄윈강(連雲港)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과 직항편이 없는 롄윈강을 가기 위해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 공항에 도착한 뒤, 자동차로 3시간 가량 남쪽으로 달리자 작은 도시 롄윈강이 나타났다. 도시 여기저기가 파헤쳐져 있고, 건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튿날 공단과 항구를 둘러보기 위해 중형버스에 올랐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머리 위에 있는 평면TV를 아래쪽으로 잡아당긴 뒤 기기를 조작하자, TV화면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해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롄윈강은 만리 중국 해안선의 중부, 아시아~유럽간 신(新)횡단철도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도시로서, 아름다운 자연과 큰 발전잠재력을 가진 항구입니다.” 시정홍보 DVD에서 중국말 대신 유창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동북 조선족 말투가 아닌 서울말이었다. 동행하던 시 개발구 관계자는 “한국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중형 버스 안에는 롄윈강시 경제기술개발구 루후이린(陸惠林) 초상국장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국에서 초상국(招商局)은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힘 있는’ 부서다. 그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한국 손님들에게 ‘경제·관광 가이드’ 역할을 했다. 그는 도시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어 보였다. 가령 항구에 도착했을 때 루 국장은 “현재 항구의 수심은 15m로 20만톤 선박이 입항하지만, 2008년이 되면 수심 20m에 30만톤급 선박이 들어올 수 있다.

컨테이너 처리 능력은 130만개에서 300만개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또 명(明)나라 때 오승은(吳承恩)이 쓴 서유기의 배경인 화궈산(花果山)에 올랐을 때, 루 국장은 작품의 탄생배경과 손오공의 활약, 산 구석구석에 얽힌 얘기들을 술술 풀어냈다. 아래 사람에게 시켜도 될 일을 그는 자청해서 즐겁게 해내고 있었다. 도시 발전전략을 짜는 기획국 쳰더푸(錢德福) 부국장은 39세의 젊은이다.

그는 이전에 난징(南京) 개발구에서 일했으나, 성(省) 정부의 지시에 따라 작년 6월 이곳으로 옮겼다. 가족은 난징에 남겨두었고, 월급도 깎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왔느냐’고 묻자 그는 “상부에서 나의 경험과 능력을 인정해준 이상, 이곳에서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쳰 부국장을 이곳으로 부른 사람은 난징에서 함께 일하던 왕건화(王建華) 현 롄윈강 당서기다. 17일 시청 회의실에서 왕 서기를 만났을 때, 그는 분명한 철학과 발전목표, 방법론을 제시했다.

“롄윈강은 발전이 늦었지만 후발주자로서 장점도 있다. 발전을 위해 환경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롄윈강을 환경과 첨단산업이 조화된 도시로 만들 것이다.”그는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다 바칠 것”이라며 “발전 못할 이유가 없다(沒有理由不發展)”고 자신했다. 중국의 한 지방도시에서 ‘젊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공무원들이 비전(vision)을 가지고 시골 구석구석을 바꾸는 모습을 본 것은 예상 밖이었다. 중국에도 부패한 공무원은 있다. 하지만 ‘거인’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가장 큰 경쟁력은, 엄청난 인구나 시장보다 각급 정부의 열정적 ‘리더십’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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