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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인들의 이웃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지칭을 보면 그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동이(東夷)가 옛 중국의 이웃 민족인데, ‘융(戎)·만(蠻)·적(狄)·이(夷)’는 모두 오랑캐란 뜻이다. 특히 농경민족인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북방 유목 기마민족들에 대한 호칭에는 열세인 현실에 대한 불만이 역으로 담겨 있다. ‘오랑캐 종’이란 뜻의 흉노(匈奴)가 그런 경우이다. 실제로 한(漢)의 시조 유방(劉邦)이 공주(公主)를 시집 보내고 매년 막대한 조공을 바쳤던 대상이 흉노였다.
서기 4~6세기까지 몽골초원의 지배국가였던 유연(柔然)은 몽골계 민족의 국가였는데, 중국 사서(史書)들은 유연의 건국 민족을 연연·예예(芮芮)·여여(茹茹)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연(?) 자는 ‘벌레가 꿈틀거린다’는 뜻이고, 예(芮) 자는 ‘작은 벌레’를 뜻하는 글자이다. 여(茹) 자는 ‘소나 말을 기르다’라는 뜻이니 그나마 유목민족의 생활을 민족 이름으로 적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은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지만 중국인들은 ‘옛 것을 덮어씌우다’라는 뜻의 몽고(蒙古)라고 표기했다.
우리 고대 민족국가들은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송서’ 이만(夷蠻)열전 같은 항목에 포함시켜 기술했는데, 그나마 고려(高麗·고구려)·백제(百濟)·신라(新羅) 등의 이름으로 표기한 것은 이들 국가들은 개국 초부터 스스로를 지칭하는 국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의 시각이 아닌 고대 중국인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夷(이)자’의 뜻을 물어보면 ‘오랑캐’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후한서’ 동이열전 서문은 ‘왕제(王制)’라는 책을 인용해 “夷란 뿌리이다. 어질어서 생명을 좋아하고, 땅에 뿌리를 박아 만물이 산출된다는 뜻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동쪽 오랑캐라는 표면적 호칭 이면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 내면의 모습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사전이나 옥편들은 이(夷)를 ‘겨레 이’, ‘민족 이’, ‘뿌리 이’라고 고쳐적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