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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송구영신의 고요한 밤에 남편과 뜨거운 차(茶) 한잔을 마주놓고 앉았다.
팽팽한 일상(日常)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부족한 시간들이 늘 아쉽다.
사랑을, 미래를, 인생을 오랜시간 이야기 해보고 싶지만 늘 피곤해 하는 남편의 모습이 안스러워 생각만으로 그칠 뿐이다.
“우리 한해를 보내며 서로의 점수를 말해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본 부부사랑 점수매기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약속을 하고 내가 받은 점수는 90점.
저녁잠이 많은 내가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의 밥상머리에서 꾸벅 꾸벅 조는 것이 싫어서 10점을 감한단다.
게으르고 무딘 내가 꼼꼼히 따지자면 감점을 받아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그저 듣기 좋으라고 후하게 덮어 두는 것 같다.
내가 남편에게 내놓은 점수는 70점. 거기서 또 10점을 감한 60점이다.
굳이 10점을 강조해본 것은 남편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무관심인 것 같아 섭섭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우리 식구 모두를 위해 바깥일에 분주한 것은 알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예요. 그래서 크게 30점을 또 깎았어요.”
정말이지 단 10점을 주고 받더라도 오순도순 모여 앉아 서로를 이해하며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마디로 묶는다면 현대인의 생활을 ‘바쁨’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분주함의 연속이다.
총각시절엔 양볼이 통통하여 미련하게 보인 남편의 얼굴이 허연 형광등 밑에 초췌하게 보인다.
목젖 가까이에서 뜨거움이 치민다.
농촌에서 밭 갈고 씨 뿌리며 우직하게 살아가던 건장한 청년이 도회지의 바쁨속에 휩싸인 것은 순전히 내탓이다.
그는 흙속에서 살기를 원했고, 나도 늘 작고 큰 도회지를 떠돌아 다니던 친정집과는 달리 내 땅에서 산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갑자기 발병한 늑막염으로 고통스러울 때 내 귓가에서 간곡히 들려주던 친구의 말들이 생각났다.
“나뭇가지 뚝뚝 분질러서 군불때고 가마솥에 밥할 수 있겠니?”
“말이 무서워. 빨래 한가지를 개울에 들고가면 그것하나 빨려고 개울까지 왔는냐 하고 집에서 빨면 얼른 개울가에서 행궈오지 집에서 꾸물거리느냐 하고 동네 아낙부터 어른들까지 말때문에도 얼마나 피곤한지 아니?”
이내 나는 마음을 굳히고 남편을 졸랐다.
의사가 늑막염을 앓는 내게 일년간은 무리하지 말고 안정하라니 농사철에 손싸매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을 떠날 수도 없고.
고민하던 남편은 딱 일년만이라는 조건으로 살림을 나게 되었다.
눈발이 희끗희끗 뿌리던 날. 짐을 챙겨 주시던 시어머니 눈에서 바삐 녹아 내리던 눈발들이 물방울 되어 번져갔다.
입만 굳게 다물고 있던 남편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치악재를 돌아 넘을 땐 펑펑 쏟아지던 눈송이 만큼이나 내 마음은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마흔이나 되어서 얻은 아들하나 믿고 살아가던 시부모님들의 설글픔과 노부모를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남편의 안타까움에 새삼 가슴이 저려온다.
일년만이라는 다짐은 바람이되어 흘렀고 막상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아이들짜지 커가는 돌아간다던 고향땅은 점점 멀어 갈 뿐이다.
내 한몸 편해보자고 부모자식 마음에 아픔 남기고 좋아라고 시작한 도회지 생활에 오히려 이렇게 붙박혀 버렸으니...... .
그래도 묵은해를 마지막 보내는 이 밤에 남편의 점수를 말하며 가정에 충실하지 못함을 불평할 수 있는 자격이 내개 남아있는 것일까?
늘 나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주인되어 있는 것에 만족했던 우둔한 나의 삶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마주보는 남편의 하얗게 패여있는 양볼이, 아직도 농사를 지으며 고희를 넘긴 부모님들의 검버섯 핀 손등이, 오늘 내마음에 이처럼 고해의 바다가 될 줄이야!
흙을 부비며 고향집 마당을 달음질하며 깔깔대던 내 두 딸의 웃음 소리가 맑게 들려온다.
내 뻔뻔함이 남아있어 다시 남편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처음 만난 곳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밭이랑에 나란히 앉아 감자를 캐고 고추를 따며 그을린 남편의 얼굴위에 쏟아지는 환한 햇살을 보고 싶다.
처음 남편을 만났던 것처럼 하얀 비닐덮인 고추밭에서 고추모를 내며 싱긋 웃어주던 풋풋한 그의 모습이 보고싶다.
지금 이맘때 쯤이면 사랑에 달린 메주뜨는 메케한 냄새를 맡으며 화롯불에 고구마를 묻어두고 마주보고 있을텐데... .
“여보 우리 고향에 내려가서 살까요.”
“이 사람아, 당신은 농사일 못해.”
무심코 대답하는 남편의 한마디가 내 마음에 돌팔매로 날아온다.
새해의 타종소리가 들린다.
오랫동안 행복이란 말 속에서 묻어두고 싶었던 내 감정과 영혼의 소리들이 종소리를 따라 낱낱이 쏟아져 내린다.
새해에는 척박한 내 마음밭부터 기경(起經)하여야겠다. 그래서 내 좋은 식구들과 이웃들에게 내 마음이 따스한 고향되어 정(精)을 나누어야지.
가장 겸손하게 마음을 연다.
새해의 열린 하늘 아래에서 내 정성과 사랑묶어 빚진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갚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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