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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쯤 되었나보다.

옆 사무실의 직원과 시급한 현안을 의논하고 있는데, 누군가 얼굴을 삐죽 들이민다.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미소....약간 머쓱해 하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아이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기도 한 그 미소를 지으며 플라바가 인사를 한다.

 

지나가던 길에 내 차가 보여서 잠깐 들렀다고...

 

급한 일을 의논하던 중이라 길게 인사도 못하고, 그냥 잘 지내냐, 드라마 그룹 공연 준비는 잘 되어가야 그런 인사치레만 잠깐 하고는 평소처럼 한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그냥 바이바이를 했는데....

 

정말 흔하디 흔한 통속 소설에서 말하는 "그것이 마지막 인사일 줄은 몰랐다."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난 주 금요일 갑자기 플라바가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문자를 보냈었는데, 답장이 없었다. 보통 때 같으면 수신자 부담으로 총알같이 다시 걸 놈인데....췟~ 안 본 사이에 애정이 식었구나...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주말을 잘 보내고, 월요일 출근을 하고 메일을 체크했더니 네덜란드에 있는 테사가 보낸 메일이 있었다. 플라바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다른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들었는데 어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뭐야....이놈 착실히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집 나간 거야?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플라바는 그럴 아이가 아닌데, 집을 나가려면 애시당초 100년 전에 나갔어야지...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것에 괴로움을 겪고 있긴 했지만(플라바의 부모는 대부분의 카야만디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미혼인 상태로 플라바를 낳았기 때문에 그 수치를 덜기 위해 할머니의 아이로 출생신고가 되었다. 아버지는 나름 동네에서 유명한 정치인이다.) 그래도 마을 신문이며, 드라마 그룹이며 빠지는 일 없이 늘 리더가 되어 아이들을 이끌던 아이인데 집을 나갈 이유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번에는 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휴대폰이 되지 않으니, 동네 아이들을 수소문해서 연락을 받기로 하고 월요일은 집에 온다.

 

화요일 아침 출근을 하여 회의에 가니 첫 안건이 플라바란다.

실종되었다던 플라바가 케이프타운의 시체 안치소에서 발견되었단다.

그나마도 아버지가 힘 좀 쓰는 사람이라 시체라도 찾은 거란다.

잠깐 화장실에 간다고 나갔다가 1교통 사고가 났다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시체 안치실 안은 얼마나 추웠을까...

며칠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아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손끝이 저릿하다.

 

금요일에 갑자기 플라바 생각이 났던 것이

어쩌면 플라바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었나...?

마지막 만났을 때 한번 더 안아주지 못한 것....

2년 전에 시내까지 차 태워 달라고 했을 때 거절한 것.....

신문 편집 회의에 빠졌다고 일주일 동안 미워했던 것....

나는 지금 그런 것만 생각이 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바는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한번 보고 싶어서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일까? 그래서 갑자기 나는 문자를 보내고 싶어졌던 것일까?

 

곰곰히 플라바를 생각하면...

플라바는 아프고, 춥고, 외롭고, 무서웠다고 울며 매달릴 아이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오히려 플라바라면 씨익 웃으며

"애이, 인생이 뭐 이래....떠나기 전에 여기 저기 들러서 인사나 하고 가야지. 안녕 안녕~ 친구들~"

그랬을 것 같다.

 

 

겨우 열일곱인가, 플라바는?

2년전에 아프리카 전통 성인식을 다녀 오고 나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나를 만나러 왔길래...

"그래 이제 어른이 된 기분이 어때?" 라고 물었을 때,

"이제 어른이니까 내가 먹고 살 궁리도 해야 되고, 여러가지로 의무가 많이 생겼는데, 양복 한 벌 말고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말을 했었었다...플라바가.

 

신문사 일도 제일 열심히 하고,

드라마 극단 일도 제일 열심히 하던 플라바지만,

플라바의 장래 희망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http://blog.daum.net/gniang/12260333)

그 꿈은 못 이루고 갔다...

 

나는...

플라바의 죽음 앞에서

삶이 허무하다거나 하는 생각보다도,

하루 하루를 더 치열하게, 더 진실되게, 더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사랑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기엔 하루 하루 주어진 오늘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그런 생각.

 

아프리카에선 이런 일이 일상 다반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버는 족족 써 버리고,

만나면 바로 사랑하고, 또 헤어지고...

에이즈에 걸려 희망이 없으면서도 애도 낳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그런 일들이...

바로 이런 이유로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플라바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신문 복간을 서둘러야겠다.

플라바는 이미 가고 없지만,

내 마음에 제2의 플라바, 제3의 플라바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녕, 플라바.

네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겠지만,

너는 거기에서도 또 다른 아이들을 부추겨서(?) 신문이니 드라마니 하며 재미난 일을 만들고 있겠구나.

너 혼자만 재미보게 할 수 없지...우리도 여기서 재미난 일을 또 할꺼야...

부러우면 놀러와~!

  1. 타운쉽의 무허가 주택지는 열가구에 하나씩 공동화장실이 지정되어 있고, 그 공동화장실도 집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 끝에 모아서 집중적으로 지어져 있다. [본문으로]
출처 : 케이프타운에서
글쓴이 : 심샛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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