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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오는 날엔
아이들이 지나간 운동장에 서면
나뭇가지에 얹히지도 못한 눈들이
더러는 다시 하늘로 가고
더러는 내 발에 밟히고 있다.
날으는 눈에 기대를 걸어보아도, 결국
어디에선가 한 방울 눈물로서
누군가의 가슴에
인생의 허전함을 심어주겠지만
우리들이 우리들의 외로움을
불편해 할쯤 이면
멀리서 반가운 친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날개라도, 눈처럼 연약한
날개라도 가지고 태어났었다면
우연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남을 위해
녹아지며 날아보리라만
누군가의 머리 속에 남는다는 것
오래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한갓 인간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눈물로 알게 되리라.



 

어디 다른 길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표정을 고집함은
그리 오래지 않을 나의 삶을
보다 <나> 답게 살고 싶음이고
마지막에 한번쯤 돌아보고 싶음이다.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나에게 <나>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것만큼
그도 나를 아쉬워할 것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으며 살아야 하고
분노하여야 할 속에서는
눈물로 흥분하여야겠지만
나조차 용서할 수 없는 알량한
양면성이 더욱 비참해진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나>조차
허상일 수 있고
눈물로 녹아 없어질 수 있는
진실일 수 있다.


 
누구나 쓰고 있는 자신의 탈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 갈 즈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뿐이다.
하늘 가득 흩어지는 얼굴
눈이 내리면 만나보리라
마지막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용기와
웃으며 이길 수 있는 가슴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눈 오는 날엔.
헤어짐도 만남처럼 가상이라면
내 속의 그 누구라도 불러보고 싶다.
눈이 내리면 만나보리라
눈이 그치면,
눈이 그치면 만나보리라.

 

서정윤님의 <눈오는 날엔>




끝 없이 이어지는 하얀 눈꽃세상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 그 길을 내 발자국만 나를 따라 걸었습니다.

하늘은 눈을 쉼 없이 내리고 눈송이는 눈꽃을 끝없이 피워냈습니다.


푸르던 날이 있기라도 했던가요? 지난 시간을 기억할 수 없게 오직 하얀색으로 덮어버린, 온 천지가 하얀 눈 세상을 걷고 걸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눈물 겹도록 곱던 이파리를 떨궈낸 나무들이 안쓰러워 이후엔 들어서 보지 않았던 앞산. 그러나 앙상한 가지에 하얗고 소담한 눈꽃을 피워 올린 나무들을 보면서 이른 아침의 우연한 산행은 끝 없는 탄성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얀 눈이 덮어버린 세상엔 반짝이는 은빛만이 넘쳤습니다.

잠시 비친 햇살에 눈은 녹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열어 주려는 배려였을까요?

 소리도 없이 날리는 눈송이들이 저마다 제각각의 눈꽃들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동네 앞산이고 중간에서 돌아온 산행길이지만 두시간여의 하얀산속에서의 은빛세계 경험은 환상이란 말이 전부일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눈발에 휘청이기도 하고, 언제 눈이 내렸느냐는듯 화사한 햇살을 쏟아 붓기도 하던 순간이 반복되며 신비로운 세상을 펼쳐 놓았던 설중 산행길.


오가는 이들이 없어 산속의 적막감이 잠시 두려움을 주기도 했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위에 설레임을 안고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던 아침 산행길은 내마음에 오랫동안 지워지거나 녹지 않을 하얀 설화를 피워냈습니다.



 

소담한 눈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눈꽃이 만개한  길을 걸었습니다.

나무들이 입고 있는 하얀 눈 옷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감싸 줄런지요. 

오르고 내려가는 길. 내 뒤를 따랐던 발자국을 내려다 봤습니다.


찍히는 발자국마다 나의 모든 무게가 실려 꾹꾹 다져지는 발자국을 돌아보고 또 걸어 가면서 흰눈이 덮어버린 은빛세상을 눈꽃들을 이정표 삼아 길을 찾았습니다. 


부실한 걸음걸이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걷는 발 밑에서 폭닥하니 감겨들던 눈의 촉감속에 흩날리는 눈발은 차라리 축하의 폭죽이었고, 하얗게 단장한 눈 내린던 산은 온통 나만의 별천지가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마주한 놀라운 정경. 햇살속에 하얀 눈꽃들이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낙엽이 쌓인 위에 눈이 다시 쌓여도 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소슬바람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가지는 연신 눈을 털어댔습니다.


눈이 나릴때는 휘날리는 눈송이에 취해 걸음을 멈췄고, 잠시 햇살이 비칠때는 은빛으로 나부끼는 눈부심에 황홀했습니다. 산길 옆 나무 등걸에 내려 앉은 소담스런 하얀눈과, 채 떨구지 못한 나뭇닢에 점점이 내려앉은 소복한 눈송이가 바싹 말라버린 물기를 살포시 채워주며, 햇살속에 물방울로 스러지는 모습엔 아스라한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졸졸졸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는 수북이 쌓인 낙엽과 한거풀 덮인 눈 틈새로 그치지 않는 속삭임을 전했습니다. 물소리 의 울림 탓이었을까요? '우수수' 여린 가지가 휘도록 내려 앉았던 눈이 제 무게를 못이기고 쏟아져 내렸습니다.

 


 

매일 바라보는 산이었는데 오늘따라 참으로 낯이 설었습니다.

햇살이 비치는가 싶더니 금새 먹구름이 눈을 몰고 다가섰습니다.


다시 눈발이 거세졌습니다. 온 얼굴에 달려드는 하얀 눈송이들의 군무에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마치 찰나의 순간이라도 세상을 하얗게 덮겠다는 다짐이라도 했는지 바람까지 가세를 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던 산이 눈속에 사라지고, 바람에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은 거침없이 산아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망연해 우두커니 섰던 나는 산 위로 오르던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어차피 내게 보여 줄 아름다운 눈세상은 이미 모두 보였노라며,  더 이상은 부질없는 나의 탐욕일 뿐이라고 겨울산은 그토록 야멸차게 일러주었습니다. 

 

 

내려 오던 길, 우연한 동행이 되었던 이가 눈이 내리는 산을 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꿈 속 같군..."


산의 품을 나와서야 내가 걸어 온 길을 돌아 봤았습니다. 눈 속에 찍힌 내 발자국이 보입니다. 설핏 부끄러움이 다가서는데 나의 못난 발자국을 휘날리며 뒤 따라 온 눈송이가 대신 지워내고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제부터 눈길을 걸을땐 내 발자국을 따라 올 그 누군가를 생각해, 아름답지 않는 발자국은 함부러 만들지 않겠습니다.

출처 : 새파랗게 날이 선 비수처럼
글쓴이 : 숨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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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암산은 네 다섯번 오른 것 같다.

처음 오른 건, 92년, 기훈을 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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