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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아, 저길 봐. 사진찍게, 응? 카야만디에선 사람뿐 아니라 개들도 나만 좋아하나봐....ㅡ.ㅡ;;;"

"내사랑" 할아버지의 집 앞에서 할버지 손녀, 멍멍이와 함께 사진찍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교실이 있는 도서관까지 가는 짧은 길을 매일 걸어 다닌다.

어떤 사람들은 흑인 빈민촌이 차로 들어가기도 무서운 곳이라고 조심하라고들 하지만,

차만 타고 다니면 이미 아는 사람, 또 앞으로 알아 갈 이웃들과 인사하는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서로 속했던 사회가 달라서 아프리카의 전통인사, 즉 "나는 무슨 부족, 무슨 파에서 온 누구 손녀, 누구 딸, 누구입니다. 부모님은 요즘 이러 저러한 일로 소일하고 계시고, 모모 아저씨는 어디에 갔으며, 누구 아줌마네 둘째 딸이 얼마전에 아기를 낳았어요. "라고 인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정도되는 즐거운 인사는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눈에 아직 나는 낯선 사람이기에 처음엔 눈을 마주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이 사분의 일 정도 되지만, 그 눈을 끈질기게 따라잡고 마주치길 기다려서 먼저 미소를 지으면, 아무리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들도 일단 마주 웃어준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잠재적 위협이 아닌 잠재적 이웃으로 각인되기까지는 순간이다. 여자라서 겪을 수 있는 한계 상황이 세상엔 참 많지만, 이렇게 낯선 곳에서 그들의 이웃이 되기에는 여자라서 다행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제도 열 두 명의 성인학생들에게 오전 내내 워드프로세서 사용법을 가르친 후, 추운 날씨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오며 간단하게 열댓명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길 모퉁이를 접어 들었다. 저만치 멀리 "내 사랑"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게 보인다.

 

남아공 흑인의 평균 수명은 마흔 몇살이란다. 그러나, 내사랑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는다. 빈민촌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부터 그나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정부에서 제공해준 최소한의 거주지가 있었기에 어쩌면 조금은 드물지만 행운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건너편 집 50대 할아버지보고 꼬마라고 부르시는 내 사랑 할아버지, 그가 "내 사랑 할아버지"가 된 사연은 이렇다.

 

"샤이(아마도 안녕~이라는 뜻?)"

"샤이"

"어디 가는 길인고?"

"네에, 도서관에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일이예요."

"사무실이 어딘데?"

"건너편 저 2층 건물 보이시죠? 저기예요."

"어디 살어?"

"케이프타운에 살아요."

"케이프타운? 그럼 뭣 타고 와?"

" 제 차 타고 와요."

"차는 어딧고?"

"저 건너편에 은색 차 보이시죠? 저게 제 차예요."

"어어~ 나도 운전 잘 해. 원래 운전수였거든."

"와, 그러셨어요?"

"결혼해 줄래?"

"하하하! 우리 부모님께 얼마 주실 건데요?1"

"하하하! 알라뷰, 레이디!"

"하하하~ 알라뷰, 투~~"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껄껄깔깔 웃는다.

온 마을이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거동이 조금 불편하시지만, 늘 하루에 한 두번은 검둥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신다. 그래도 카야만디 이쪽 마을엔 오래 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이 어르신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는 나는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조금은 향수에 젖는다.

 

그러나, 올 해 들어 내사랑 할아버지는 산책에 나서는 시간보다는 집 앞 길가 의자에 앉아 조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가끔 멀찌기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이 숙인 자세로 꿈쩍도 않고 계신 모습에 어느 순간 달려가서 어깨를 흔들며 인사를 하게 된다. 인생이 원래 그렇게 왔다가 또 가는 거지만, 괜히 나는 할아버지 걱정이 된다.  

 

몸만 불편하신 게 아니라,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으신지, 매일 매일 내가 케이프타운에서 온다는 걸 알려드려도 또 다음날이면 다시 물어 보신다. 마치 드루 베리모어가 나오는 영화 " 첫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같달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일 매일 할아버지가 알라뷰~하시는 건 절대 잊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꼭 청혼을 해 주신다는 것.

 

세상에 어떤 일은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어서 즐거울 때도 있다.

 

 

  1. 남아공도 아프리카라 흑인 사회에선 결혼하려면 신부 가족에게 신부값(?)을 줘야 한다. 사랑하는 만큼, 혹은 신부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많이 많이 줄수록 자랑이 된다. [본문으로]
출처 : 케이프타운에서
글쓴이 : 심샛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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