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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세계 피겨스케이팅대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연기(演技)하는 김연아의 등은 누런 테이프투성이였다. 허리 통증을 이기려고 진통제를 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압박 테이프를 허리부터 등까지 잔뜩 붙여야 했다. 부상(負傷)의 고통 속에서도 열여섯 살 소녀는 영국 바이올린곡 ‘종달새의 비상(飛翔)’에 맞춰 종달새처럼 솟구치고 백조처럼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올해 여섯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를 치러 가장 뛰어난 6명만이 출전한 ‘왕중왕(王中王)’ 대회를 한국 빙상(氷上) 100년사(史)에서 처음 제패하는 순간이었다. 전날 김연아를 제법 큰 점수차로 앞질러 1, 2위를 달리던 일본 선수들은 엉덩방아를 찧고 실수를 연발하며 제풀에 무너졌다. 주니어대회 세 차례 우승과 지난달 ‘그랑프리’ 4차 대회 우승에 이어 한국 피겨 역사의 새 페이지를 고교 1학년 김연아가 써가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은 한국과 인연이 없는 종목으로 여겨져 왔다. 체격조건과 기술 수준은 워낙 서구(西歐)가 앞서 있다. 만만찮은 비용도 웬만한 가정에선 큰 부담이다. 그래서 등록선수가 100명도 안 된다. 이런 여건에서 코흘리개 김연아를 갈고 닦아 보물로 키운 이가 어머니 박미희씨다. 박씨는 일곱 살배기를 스케이트장에 처음 데려가고 초등학교 때 선수의 길로 들인 뒤 하루 24시간을 몽땅 딸에게 쏟아 넣었다.
김연아의 하루는 아침 8시 동네에서의 달리기와 체력훈련으로 시작해 낮엔 태릉 국제링크에서 3시간 빙상훈련, 오후엔 체력훈련에 이어 과천 실내링크에서 자정(子正) 가깝게 밤훈련이 이어진다. 이 힘든 하루 내내 연아의 곁을 지키며 다독이고 야단치고 다시 힘을 불어넣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박씨는 세계적 선수들의 비디오를 수십 개씩 녹화해 분석할 만큼 전문가가 다 됐다.
평범한 중산층인 연아의 부모는 10년 가까이 매년 1500만원씩 들여 딸을 2개월씩 해외훈련에 보냈다. 무리를 한 것이다. 일본스케이트연맹은 1994년부터 어린 피겨 유망주 100명을 뽑아 세계 최고 코치와 안무가를 붙여 주고 해외훈련을 지원해 가며 키웠다. 일본에서는 나라가 한 일을 연아의 어머니 아버지가 감당한 것이다.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그간의 어려움을 되새기며 눈물을 보이곤 했다. 종달새처럼 솟구치고 백조처럼 내려앉기까지 연아 곁을 지켜온 어머니의 10년 세월이 장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