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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내가 1974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등을 수상했을 때, 정작 가장 잘한 사람은 4등을 차지했다. 내가 보기엔 틀림없이 그가 1등이었지만, 정작 그는 “나는 헝가리 사람이기 때문에 심사위원단이 어느 정도 이상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4등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냉전 당시에는 언제나 정치적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그는 지금은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안드라스 시프(Schiff)다.

당시 어떤 심사위원은 내게 1등을 줘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만약 1등을 했더라면, 거꾸로 ‘내 인생의 비극’이 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1등을 하려면 1등처럼 연주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당시 내 피아노 연주는 그 정도 수준에 있지는 않았다.

2등이 1등보다 좋을 때도 많다. 나는 1등보다는 2등을 더 많이 해본 사람이다. 나는 누나 정명화(첼로)와 정경화(바이올린)의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도 반주를 사랑한다. 지난해 오랜 음악 동료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내한 독창회 반주를 맡았을 때도 계속 지휘를 하다가 오랜만에 피아노를 연주하니 마치 ‘음악 휴가’를 떠난 것만 같아 즐거웠다. 혼자서 연주하는 ‘독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을 뒤에서 받쳐주는 ‘반주’이니 우선 2등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와 말러처럼 음악에서 1등은 언제나 작곡가가 차지한다. 연주자는 어쩌면 작곡가가 없으면 ‘일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연주자는 작곡가에 이어 늘 2등이다. 또 결혼한 뒤에는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아내를 따라다니고 있으니, 결혼 생활에서도 2등이다.

4년 전쯤 일본의 한 음악 잡지에서 일본 오케스트라의 순위를 매겨서 발표했다. 내가 음악 고문을 맡고 있는 도쿄 필하모닉은 당시 2위를 차지했다. 도쿄 필하모닉은 NHK 교향악단, 요미우리 일본 교향악단과 함께 일본 음악계에서 항상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많은 단원, 사무국 직원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했고 또 서로 격려했다. 2등은 언제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서울시향 예술 감독을 맡은 뒤에도 악단의 연주 수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는지, 세계 수준에 이르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들이다.

그럴 때마다 “오케스트라는 꽃이 아니라 마치 나무 같아서 자라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혹시 1위가 아닐지 몰라도, 베토벤에 이은 브람스 교향곡 시리즈와 ‘찾아가는 음악회’ 같은 연주회를 통해 서울시향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30여 년 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을 했으면 지금처럼 지휘를 할 수 있었을까 종종 나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어쩌면 빡빡한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작 20대 초반의 중요한 시기에 음악 공부를 할 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1등은 늘 화려한 조명을 받지만 동시에 평생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정상에 올라가는 기분은 짜릿하겠지만, 내려갈 때의 압박감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반면, 2등에게는 노력만 한다면 언제나 희망과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당장 1등이 아니라는 데 낙담하지 말고, 언젠가 1등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데서 서로 희망을 찾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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