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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약
쉔바인에 의해 발견
면화약(Guncotton)은 섬유소에 질산을 작용시켜서 제조하는 질산섬유소(Cellulose nitrate)의 관용명으로 초하면(Nitrocotton) 또는 니트로셀룰로즈(Nitrocellulose)라고도 한다.
면화약은 외관상 솜과 매우 유사하지만 쉽게 인화되며 폭발적으로 연소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면화약을 화학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브라콩(Broconnot, 1831년)과 펠로우즈(Pelouze, 1838년)이다. 이들은 목면 등을 농질산에 용해시키는 방법을 사용해 가연성의 물질을 얻었다.

그러나 면화약에 관한 더욱 깊이 있는 연구는 같은 시대의 쉔바인(Christian Friedrich Schoenbein, 1799-1868년)에 의해서 진행됐다. 그는 1845년 솜을 황산의 존재 하에서 농질 산으로 처리할 때 생성되는 면화약을 발견했다. 이렇게 섬유소에 질산과 황산이 혼합된 혼 산을 작용시키는 니트로법은 쉔바인이 처음 시도하였다. 쉔바인이 착안한 이 혼산의 개념은 오늘날까지 면화약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니트로화합물 제조에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 쉔바인은 그가 발명한 면화약의 발사약으로서의 사용 가능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면화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면화약 사용하는 발사약 연구
프랑스에서도 1846년에 펠로우즈 등을 주축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면화약에 관한 연구를 비밀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연구 중에 많은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3년 뒤 중지되고 말았다. 러시아에서도 면화약의 제조는 비슷한 경위를 거치면서 자국내 판매는 물론이고 수송까지 금지됐다. 그러나 독일연방의 일원이었던 오스트리아는 1852년에 면화약을 군용으로 사용할 계획을 수립하고 폰 렌크(Baron Von Lenk) 대위로 하여금 연구를 추진하게 했다. 렌크 대위는 쉔바인이 제조한 면화약을 중성 용액만으로 세척하던 방법을 더욱 길게 안정화시키면서 개량했다. 그는 면화약을 3주간 세척한 다음에 15분간 희박한 알칼리용액에서 끓여주고 다시 수일간 수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원래 면화약은 화기에 예민하지만 자연 분해에 따른 열의 축적에 의해서도 쉽게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이같은 자연 분해의 경향은 면화약에 남아 있는 산분의 양이 많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렌크는 당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면화약의 이런 속성을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렌크는 계속해서 면화약을 사용하는 발사약의 제조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제조한 분상의 면화약은 연소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포열이 파열되어 실패로 끝났다.

오늘날처럼 면화약을 용제로 교질화시킨 다음 성형하는 방법을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용제를 사용하는 무연화약의 제조법은 훨씬 뒤인 1884년에서야 비에이유에 의해서 처음 발명되었다. 면화약을 발사약으로 사용하려는 착상은 매우 훌륭하였지만 렌크는 당시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말았다.


면화약의 정제법 개발
영국의 월섬 애비(Waltham Abbey)에 있는 왕립 화약공장에서도 면화약에 대한 소규모의 제조 및 연구가 시작됐다. 당시의 대화학자였던 에이벨(Sir Frederick Augustus Abel, 1827-1902년)의 지휘하에 연구가 진행돼 많은 발전을 거두었다. 이들은 초기에 솜 대신 펄프를 사용했는데 이 경우 제조와 정제공정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장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압착하여 총포에 사용하는 방안까지 고안하였으나 발사 시험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면화약의 공업적 제조와 무연화약으로 사용하는데 필요한 기반이 구축되었다.

이들은 렌크의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서 에이벨니트로화법이라는 최초의 공업적 니트로화법을 확정했다. 그리고 조면약을 세단기(Beater)에 걸어서 세단 세척하는 방법으로 면화약의 안정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제조·정제한 면약은 안정성도 우수하였을 뿐 아니라 쉽게 압착할 수 있어서 취급에도 편리하였다. 그러나 에이벨은 면화약의 공업적 제조에는 성공하였으나 이를 발사약에 응용하는 방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에이벨에 의해 면화약의 정제법이 해결되면서 면화약의 제조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세기 말엽에는 면화약을 사용한 무연화약의 제조가 성공하면서 면화약의 수요는 급증하게 됐다. 그리고 1905년에는 로버트슨(Robertson)이 면화약의 정제(불안정화 황산에스테르의 제거)에는 소량의 산 또는 혼산이 존재하는 물 속에서 끓여주는 편이 더욱 쉽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면화약의 제조와 정제는 에이벨 당시보다도 크게 단순화되었으며 정제시간도 단축됐다.


20세기 이후의 면화약 제조법
면화약의 공업적 제조 기술은 사실상 완성되었지만 실제로 에이벨의 니트로화법은 조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세기초부터는 니트로화 공정의 단순화, 기계화 및 생력화라는 측면에서 개량이 진행됐다. 그 결과 20세기초부터 니트로화기와 제산기를 공용하는 셀비히-랑게법(Selwig-Lange Method)이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채용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1905년에는 나탄과 톰슨(Nathan & Thomson)이 영국의 월섬 애비에서 인력과 동력을 절약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톰슨식 또는 치환식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캐나다 및 일본 등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락카용 바엽지의 니트로화용으로 오래전부터 하이야트(Hyatt)식 니트로화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밖에 미국에서 면실의 부산물인 면설(Linter)의 니트로화용으로 듀퐁(Du Pont)식이 개발됐다. 이 방법은 지금도 소규모의 화분식을 채용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예가 많다. 그리고 20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의 장점을 수용한 연속식이 개발됨으로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화약박물관(http://museum.hanwha.co.kr:7400/b/history_temp.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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