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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천하(朝聞天下)’. “아침에 천하의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다. 중국 TV의 아침 종합뉴스의 타이틀이 ‘조문천하’다. 요즘 중국 TV의 아침 뉴스에는 힘이 넘친다.
인민대회당에서는 중국과 미국 간에 최초로 열린 전략경제대화가 펼쳐진다. ‘대화’에는 미국과 중국 경제 담당 스타 장관들이 총출연한다. 폴슨, 버냉키, 구티에레스,… 우이(吳儀), 보시라이(薄熙來), 마카이(馬凱)…. 호화판 스타들이 펼치는 게임의 제목은 “도박, 그러나 상생(相生)”, “미국 최고의 중국통(中國通)과 중국 ‘제1의 처녀’의 대결”이다. 중국을 70여 차례나 방문했다는 폴슨 재무장관과, 미혼의 석유전문가로 대외무역경제 장관을 거쳐 대외무역담당 부총리를 맡고 있는 우이 간의 대결을 가리키는 말이다. 멋진 대머리 스타였던 율 브리너를 연상시키는 폴슨과, 금테 안경, 잘 빗어넘긴 은발에 넉넉한 체구의 우이가 서로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리며 힘찬 악수를 주고받는 모습은 중국 보통 인민들에게 “우리 중국 정말 많이 컸다. 못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긍지를 심어줄 만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계 호화 캐스팅들이 연출하는 ‘전략대화’ 다음 소식은 ‘도하’다. 카타르 도하 아시안 게임을 휩쓸고 있는 중국 스포츠 스타들의 승전보를 전하는 ‘조문천하’의 앵커 멘트는 한두 명 스포츠 스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이 언제 100개의 금메달 숫자를 넘어서느냐, 과연 150개를 언제 넘어서느냐, 160개를 넘었는데 과연 몇 개까지 따게 될까 하는 것이다. 2위가 한국인지, 3위가 일본인지 아닌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110미터 허들 세계기록 보유자 류샹(劉翔)이 결승전에서 전력 질주를 하지 않고도 여유 있게 금을 따는 모습, 바로 그 뒤에도 중국 선수가 뒤따르는 모습 또한 중국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한다. 앵커 멘트는 “아시안 게임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우리 중국이 과연 미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는 데까지 나간다.
참으로 엉뚱한 것은 6자회담이다. 6자회담도 중국 TV의 아침뉴스를 힘있게 만드는 재료 중의 하나다. 앵커는 6자회담에 관한 멘트를 잘생긴 얼굴의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에게 넘긴다. “우리는 회담 참가국들이 충분한 대화를 하고 토론을 가질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는 참가국들이 개방적인 태도로 회담에 임해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마치 중국은 회담 참가국의 일원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선의(善意)로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뉘앙스다. 앵커들이 풍기는 그런 뉘앙스는 제법 알 만한 사람도 “그렇게 형편 없이 가난한 북조선이 만든 핵폭탄이 뭐 제대로 됐겠느냐”고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중국 보통 인민들의 관심은 중국이 미국 일본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을 불러모아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하는 ‘둥다오주(東道主·개최국)’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TV는 이전에는 저녁 뉴스 위주였다.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저녁 뉴스 ‘신문연파(新聞聯播)’가 중심이었다. 잔잔한 애상(哀傷)조의 시그널 뮤직과 함께 시작되는 7시 저녁뉴스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편집과 나이 많은 앵커들의 ‘혁명적’ 말투에 국가주석과 총리 등 정치지도자 중심의 보도를 하는 저녁뉴스를 화제로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빠른 박자의 힘찬 시그널 뮤직에 세계가 돌아가는 이야기와 생활정보가 많고, 젊고 아름다운 남녀 앵커들이 빠른 회화체의 말투로 전하는 오전 7시의 ‘조문천하’가 중국인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뉴스로 자리잡았다. 6자회담은 ‘조문천하’에서 중국이 잘나간다는 것을 전하는 재료의 하나로 ‘전락(轉落)’한 것이다. 이미 조연으로 전락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처지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