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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5메가와트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다. 2003년 2월 가동을 재개한 이 원자로는 2005년 봄 12kg 정도의 플루토늄을 빼내기 위해 잠시 정지했다가 그해 6월부터 지금까지 가동되었다. 원자로 가동중단은 플루토늄 추가 생산이 일시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주 중에는 6자 수석대표 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 다시 확산되는 듯하다. 그러나 북핵폐기의 길은 여전히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냉철한 자세로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선 북한정권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신속하고 진실되게 핵폐기를 하겠느냐는 점이다. 핵폐기를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2·13 합의는 첫 출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북한은 BDA 문제를 핑계로 합의이행을 5개월이나 지연시켰다. 제네바 기본합의 때의 ‘동결’보다 강도가 높은 ‘폐쇄’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도 없다. 7월 6일자 외무성 대변인의 말과 같이, 보상이 부족한 경우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가동중단’이란 말만 쓰고 있는 것이다.

원자로 가동중단이 갖는 의미를 확대 해석하는 것도 금물이다. 작년 10월 핵실험 직후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해커 박사 일행에게 영변 원자력연구소 소장은 2007년 중에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2003년 이후 2년에 한 번씩 원자로 가동이 중단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번 원자로 가동중단이 핵폐기 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원자로의 기술적인 문제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핵시설 폐쇄 이후의 불능화 단계가 순조롭게 이행될지도 불투명하다. 기술적으로 불능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군축조약은 폐기의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 사소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이행과정에서 교묘하게 합의를 위반할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1990년에 체결된 유럽군축조약의 경우, 전차를 폐기하는 방법의 하나로 포미(砲尾)로부터 100mm 이내의 지점에서 포신(砲身)을 둘로 절단하도록 했다. 불능화 절차의 합의에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므로 미국이 희망하는 대로 금년 내에 불능화가 마무리될지는 의문이다.

그 밖에 ‘고농축우라늄(HEU)’과 핵무기에 관해서 성실한 신고가 이뤄질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HEU 문제는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통해서 북한이 다량의 장비와 물질을 습득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의혹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는 경우 6자회담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의 7월 13일자 담화는 북핵폐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를 알려주는 예고편이다. 한국을 배제한 채 북·미·유엔 3자가 외국군 철수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문제를 다루자는 이 담화는 핵을 자산으로 한미동맹 무력화, 정전체제 와해 및 북한주도의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북한정권의 오랜 전략을 드러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핵폐기는 우리의 소망대로 신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6자회담만이 문제해결의 유일한 수단이란 편협한 시각도 버려야 한다. 주식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산투자 하듯이 우리의 국가역량도 불확실한 외교안보환경에 대비한 분산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정권교체라는 국가적 취약시기에 국력의 분산투자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진다. 우선 핵폐기가 실현될 그날까지 북한이 갖고 있을 핵무기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과도한 보상요구에 대응한 국제적 공조방안도 요구된다. 더 나아가 6자회담의 성패와 관계없이, 북핵폐기 과정을 우리의 국익에 합치되도록 관리하면서 신속히 완료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외·대북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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