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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알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래서 나온 지침들이 더러 있습니다. “즐기려면 같이 가고 느끼려면 혼자 떠나”라거나, “진솔한 삶의 풍경을 보려면 화려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마을이나 도심의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라거나.

 

한편 여행의 폐해를 꼬집는 말들도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여행사의 상혼에 속아 의미 있는 여행은커녕 헛고생만 하고 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 다녀온 뒤 공연히 관념적인 사람으로 변해서 일상사에 대한 긴장을 놓아버린 채 방황을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등등.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 한발 앞서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을 듣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행의 단상이 담긴 책들은 세상에 널린 여행지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훌륭한 여행기들이 더러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대륙을 누비며 민중들의 척박한 삶을 온몸으로 체험한 끝에 마침내 혁명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청년 게바라의 <모터사이클다이어리>, 상실감과 허무를 달래려 중세의 수도원들을 순례했던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자전거 페달을 굴려 우리의 온 산천을 헤집으며 때로 자연에 동화되고 때로 그 속에서 웅숭깊은 사색의 나래를 펴고 있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 간 곳은 유럽의 도시들이지만 정작 둘러 본 곳은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김형경의 <사람풍경>, 미술작품을 매개로 그 속에 담긴 여성의 삶과 예술을 훑고 있는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역시 자전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횡무진 한 끝에 한결 가다듬은 철학적 사유의 단면을 편안한 문체와 그림으로 정리해 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등 기나긴 여운을 남기는 여행기들입니다.  

 

오늘따라 서언이 길었습니다. 여행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던 탓이려니와 그러나 가지 못해 가슴에 쌓아둔 결핍감이 해소되지 못한 탓인 듯합니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과연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 삶의 귀착점은 대체 어디여야 할지를 진지하게 궁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볼 참입니다.  

 

각설하고 이달의 키워드는 ‘인생’과 ‘여행’입니다. 앞서 여행기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았습니다만 기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인생과 여행을 한 데 묶어놓은 본보기가 될 만한 책들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즈음 줄기차게 출간되고 있는 인생 혹은 여행과 관련된 책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요?

 

먼저 ‘인생’입니다. 사실 인생이 출판계의 키워드로 자리하게 된 데는 출판기획의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류시화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획하고 번역한 <인생수업>이 초특급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새삼 삶과 죽음의 문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그러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 바로 이어지는 ‘인생’을 모토로 한 책의 출간 붐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중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소개하고 있는 <자아의 발견>이나 <벤저민프랭클린 인생의 발견>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근래의 키워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책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인생을 바꿔줄 선택>, <인생 코칭>,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시간의 기술>,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인생이여, 행복하라>, <인생 재발견> 등 일련의 인생 시리즈들은 근래 독서계의 주요 분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자기계발’ 관련서와 이달의 키워드 ‘인생’과의 절묘한 조화 혹은 아름다운 결합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키워드는 다시 서론을 잇는 얘기로 돌아가게 만드는 ‘여행’입니다. 앞서 여행 혹은 여행기에 대해 말씀드린 것 가운데 이달의 키워드와 부합하는 말은 부러 아껴두었습니다. 다름 아닌 ‘오지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다루는 여행기들은 대체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 많이 알려진 방식의 여행이 아닌, 덜 알려졌거나 덜 가는 곳들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이른바 오지여행의 경험들을 들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바람결 따라간 오지 여행>을 소개할까 합니다. 여행은 다시, 계획하고 떠나는 것과 계획 없이 그야말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많이 알려진 곳이라면 제아무리 계획이 없다 해도 이미 길이 난 곳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무계획여행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사람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상시적 위험과 때때로 엄습하는 고립감과 외로움, 그것들과의 싸움을 통해 오롯이 삶의 의미를 되짚게 되는 참다운 여행, 오지여행의 참맛을 들려주는 책이어서 이달의 키워드와 가장 잘 부합하는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낭여행의 즐거운 경험들이 농축된 <한 여름 밤의 꿈, 잉카>,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편 신선함을 무기로 내세운 참신한 여행기들이 이즈음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을 하나로 묶어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는 <팝콘과 배낭 : 아시아, 영화로 기행하다> 역시 참신성과 기획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아울러 자기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접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여행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수채화가 프랑수아 데르모와의 만남을 통해 묵직한 철학적 사유를 감수성 넘치는 수채화 같이 버무려낸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도시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의 섬세한 펜 끝에서 길어 올린 그림과 짧은 단상들이 잘 조화된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문화유적답사를 통해 자연 속에 어우러진 예술작품들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한 단상들이 일품인 <선화 : 마음이 단순해지는>, TV다큐멘터리 전문PD의 눈으로 바라본 남미의 모습이 담긴 <내 인생을 바꾼 여행 - 세상에 남은 마지막 그곳 남미> 등도 주목할 만한 여행기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책들이다.

출처 : 시라노의 주책잡기
글쓴이 : 시라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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